문화도시 3화. 문화가 꽃피는 통영의 섬바다

통영 여명

지금은 예향 통영으로 명성이 높지만 실상 통영은 구국의 땅이다. 1592년 7월 7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의 부대와 합류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의 배 70여 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 한산해전의 승리가 없었다면, 육상 전투에서 연패를 거듭하며 한양까지 점령당했던 조선은 멸망의 길로 갔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 했다. 호남을 지키지 못하면 나라를 방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호남은 조선의 보급 창고였기 때문이다. 결국 통영이 호남을 지켰고 조선을 구했다. ‘약무통영 시무국가(若無統營 是無國家)’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조선 시대에는 해안 도시 간에 교류가 활발했다. 그 전통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이어져 여수와 통영, 부산을 잇는 여객선이 1990년대 말까지 운항됐다. 남해안 한가운데 위치한 통영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런 지리적 위치 덕에 통영은 동서남해 어느 바다로도 진출하기 쉬워 어업이 융성했다. 수심이 깊고 조류 흐름이 좋은 데다 수많은 섬들이 방파제처럼 거센 파도를 막아 주는 덕분에 통영의 수산 양식업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굴과 멍게 양식은 우리나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육로가 발달하지 않아 바다가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통영은 경상도 내륙보다는 수로를 통해 경상도 해안이나 전라, 충청, 경기 등 타 지역들과 적극적으로 문물을 교류했다. 군사도시인 까닭에 양반보다는 중인들이 주축이었고, 장인들의 수공업과 객주, 상인들의 상업 활동이 전국 어느 곳보다 활발했다. 많은 통영 사람들이 나전칠기, 소목, 화공 등 12공방의 일을 3백여 년 동안이나 가업으로 이어오면서 그들의 몸속에는 예술적 유전자가 형성됐을 것이다. 음악가 윤이상의 아버지도 유명한 소목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수산업의 발전으로 이룩한 경제적 부, 12공방에서 비롯된 예술적 유전자가 결합하며 탁월한 예술인들이 다수 탄생했다.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통영 출신 예술가들이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통제영에서 비롯된 예술적 유전자와 신문물을 일찍 수용할 수 있었던 통영의 역사와 지리적 요인 덕분이다.

통영은 섬 왕국이기도 하다. 미륵도,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등 크고 작은 570여 개의 섬이 통영 본토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기초단체 중에서는 100섬 신안군 다음으로 섬이 많다. 통영의 섬들은 모두 명승지다.

사량도는 한국 100대 명산으로 꼽히는 지리망산이 있어 산악인들의 성지가 됐다. 소매물도는 한때 한국인이 가장 가보고 싶은 섬 1위에 꼽힐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비진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수욕을 즐겼을 정도로 아름다운 산홋빛 해수욕장이 있다.

한산도는 이순신 장군의 섬이다. 1593년 8월,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1597년 2월 파직될 때까지 한산도에 주둔했다. 7년 전쟁 중 3년 8개월을 한산도에 머물렀으니 가히 장군의 섬이라 이를 만하다.

욕지도는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욕지(欲知)의 뜻은 무엇일까? 보통 ‘알고자 하는’으로 풀이되지만 그냥 글자 뜻풀이일 뿐 진짜 의미를 풀이해 주지는 못한다. 무얼 알고자 한다는 말인가? 욕지도의 뜻은 주변의 다른 섬들,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 등의 섬들과 연계될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린다. 욕지도를 비롯한 이들 섬의 이름은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이라는 불경 구절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화장세계(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께 물어보라.”

미륵도와 반야도(반하도) 또한 이 불국토의 자장 안에서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미륵도는 섬 이름마저 미륵 부처님이다. 욕지도에는 불곡(부첫골)이란 마을도 있다. 1937년 두미도의 감로봉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 입상이 발견되었다. 연화도에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도했다는 전설까지 있다. 통영 앞바다의 여러 섬들이 불교문화의 자장권에 있었던 것은 오랜 전통이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 억불숭유 정책과도 관련이 깊다. 유배자의 후손들이나 도망 노비, 관의 수탈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섬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처럼 지배세력의 탄압을 피한 불교 수행자들이 찾아낸 피난처 중 하나가 통영 바다의 섬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뭍에서는 이룰 수 없는 연화세계, 불국토의 꿈을 섬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불교에서 비롯된 통영 바다 섬들의 이름은 그 꿈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연화도는 섬의 모양이 연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하지만 연화봉 정상에 올라서 보면 연화도는 섬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연꽃과는 무관하다. 연화도의 이름이 섬의 형상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이 명확해진다. 그보다는 연화, 욕지, 두미, 상노대, 하노대, 갈도, 국도, 세존도, 미륵도, 연대도 등의 섬들이 둥그렇게 펼쳐져 그리는 모습이 흡사 연꽃 같다. 연화세계는 하나의 섬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다. 넓은 바다에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이루는 동심원(同心圓). 서로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섬들 간의 연대 속에 연화세계는 연꽃처럼 피어오른 것이 아니었을까.

글, 사진 강제윤(시인, 섬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섬연구소를 설립해 섬 주민 기본권 신장과 섬의 가치를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섬 주민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여객선공영제를 정부의 국정과제로 만들었으며 국가 섬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섬진흥원 설립을 이끌었고 설립위원 및 이사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섬 둘레길 프로젝트 ‘백섬백길’ 사이트 구축을 총괄했으며 문체부 섬 관광위원, 행안부 정책자문위원, 국가균형발전사업 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 <날마다 섬밥상>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