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7화. 통영 12공방 역사가 만든 통영 공예 세계
통영을 찾는 이들에게 도시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한산대첩과 이순신, 570여 개의 섬과 아름다운 자연경관, 풍부한 해산물과 맛있고 다양한 음식, 그리고 전통공예와 다수의 예술인의 배출이라고 답한다. 역사 속 이순신 장군의 영향이 여전한 곳이자, 웬만한 손맛을 가진 식당은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미식가가 많은 도시. 심지어 통영시청 행정 부서의 소소한 팻말조차 자개로 장식되어 있는 곳이 바로 통영이다.
<통영시지>에 따르면, 통영은 ‘역사시대에는 거제 혹은 고성에 속한 이름 없는 한촌으로 오랫동안 역사의 뒤 안’에 있었다. 선조 26년(1593년) 6월 21일, 전라좌수영 수군이 한산도로 이진(移陣)하였고, 같은 해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직제가 만들어지면서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 선조 37년(1604년), 현재 통영시 문화동인 두룡포(頭龍浦)로 본영을 다시 옮겼다. 즉, 선조 37년에 본영을 옮기기 전에 이미 통제영의 입지 분석과 세병관, 백화당, 정해정 등 군영 관아를 먼저 건설한 통영은 조선 후기 몇 안 되는 계획도시였다. 비로소 통영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당시 통제영 본영 안에는 군수품과 임금이나 고위 관리에게 바치는 진상품을 제작하는 공방이 설치되었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은 군사와 피란민을 동원해 둔전(屯田)을 일구고, 소금을 굽고, 전투에 필요한 배를 건조하며, 공고(工庫)를 설치해 군수품을 자급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통영 12공방의 시초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통영시지>와 <통영군지>에 남아 있는 18~19세기의 12공방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전국에서 솜씨 좋은 장인이 통영 12공방으로 모여들었고, 군수품뿐만 아니라 수준 높고 질 좋은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제작하였다. 덕분에 통영 12공방의 공예품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그렇다면 왜 12공방일까. <명품명장 통영 12공방 이야기>를 보면 ‘12라는 숫자는 수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수사학적 의미’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열두 고개, 열두 폭 치마, 열두 대문 등의 표현은 ‘아주 많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12공방 또한 ‘온갖 공인들이 모여 있는 수많은 공방’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통영 예술 기행>에서도 ‘아주 많음’ 혹은 ‘꽉 찼음’의 뜻으로 12라는 숫자를 설명하고 있다.
현재 통제영 안에 복원된 12공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잇다.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등을 만드는 ‘총방’, 흑립을 이용하여 갓을 만드는 ‘입자방’, 버들가지 등을 엮어 상자를 만들었고 지금은 대발을 만드는 ‘상자방’, 자개를 붙여 나전 제품을 만들고 공예품에 칠하는 ‘칠방(패부방)’,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드는 ‘소목방’, 지도 및 의장용 장식화를 그리는 ‘화원방’, 신발을 만드는 ‘화자방’, 말 안장을 만드는 ‘안자방’, 활집인 동개를 만드는 ‘동개방’, 금, 은제품을 만드는 ‘은방’, 주석과 백동 등으로 장석을 만드는 ‘주석방’,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는 ‘야장방1, 2’, 단오절에 임금이 하사하던 부채를 제작하는 ‘선자방 1, 2’ 등이다.





통제영 이후로도 삼백 년의 시간 동안 통영 장인의 맥은 이어져 왔다. 1926년 1월, 파리의 만국박람회에서 ‘담뱃서랍과 화병’으로 입선했던 나전장 전성규와 김봉룡.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던 통영 장인들은 고된 시절을 거치면서도 절대 움츠러들지 않았고, 기술을 예술로 끌어올리며 오늘날까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왔다. 갓일 정춘모, 염장 조대용, 나전장 고(故) 송방웅, 나전장 박재성, 나전장 장철영, 나전장 김종량, 두석장 김극천, 소반장 고(故) 추용호, 소목장 김금철, 섭패장 이금동, 통영미선 구영환, 통영전통한선(선목장) 정복근, 통영누비 조성연, 통영전통비연 고(故) 김휘범’, 현재 통영에서 만난 국가무형유산이자 장인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 본다.
통영은 예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고, 거친 바다와 부대끼며 호방하고 진취적인 기상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던 도시다. 통영의 장인들은 전통 기법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기법 연구와 도전을 늘 시도해 왔다. 전통미를 계승하면서도 시대감각을 적극 접목시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전칠기, 기능을 유지하되 심미성은 놓치지 않는 부채, 다양한 용도로 변신하여 섬과 섬 사이 호수 같은 바다의 잔물결을 연상하게 되는 누비, 통영 바다를 지켜 준 배,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전통비연 등, 통영의 자연, 통영 사람의 예술적 감수성, 장인의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과 고품질을 추구하는 열망이 맞아떨어진 결과가 통영 공예이다.
통영 12공방의 장인과 공예가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색채미, 단순미, 정치미(精緻美), 형태미, 멋스러움을 가미한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왔다. 매일 치열하게 노력하고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2025년 현재 문화도시, 예술 도시로의 재도약을 시도하는 통영은 장인과 공예가들이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작업하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12공방의 역사 및 장인과 공예가들의 서사를 만들고 이를 기록하면서, 후대에 통영 12공방의 예술적 DNA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문화도시 통영이 바라보는 방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