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10화. 윤이상 그리고 통영국제음악제

윤이상은 평생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통일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66년 도나우에싱겐에서 관현악을 위한 <예악>을 초연하며 ”동양과 서양을 완벽하게 결합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았고,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축제에 위촉된 오페라 ‘심청’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베를린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튀빙겐대학 명예박사를 받았으며, 독일 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도 받았다. 동양 음악가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적 성취와는 달리,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정치적 구설에 휘말린 윤이상은 겨우 죽음을 모면하고 조국을 떠나 독일 국적을 취득했고, 이후 평생토록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었다. 언론은 그를 두고 ‘20세기의 오디세이’라고 불렀다.

그는 개인과 사회가, 동양과 서양이, 또한 남한과 북한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현실이 지독하게 갈라놓은 두 세계를 아우르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 점에서 윤이상은 선지자였고 그러므로 ‘예정된 수난자’일 수밖에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인 1981년 윤이상은 <광주여 영원하라>를 초연했고, 1987년까지 매년 한 곡씩 교향곡을 발표했다. 1990년에는 평양에서 ‘범민족 통일 음악회’를 성사시켰으나 그로 인해 건강을 크게 해쳤다. 평생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하던 선생은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타계한 직후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은 “음양(陰陽), 동정(動靜), 강약(强弱)의 조화와 변화를 담아 동서양의 접목을 시도한 위대한 작곡가”, “정치적 인본주의를 표방한 휴머니스트”라고 평했다.

윤이상이 타계한 후, 그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자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가장 먼저 1996년 독일에서 국제윤이상협회(Internationale Isang Yun Gesellschaft E.V.)가 생겼다. 이를 통해 공연, 심포지엄, 녹음, 출판 등으로 윤이상 음악의 국제화를 촉진하려는 의지가 모였다.

2005년에는 서울에서 윤이상평화재단이 창립되었다. 이 단체는 추모사업과 함께 윤이상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특히 남북 문화교류에 중점을 두었다. 윤이상 평화음악상을 제정하여 평화에 이바지한 음악가들을 치하했다.

가장 지속적인 사업은 그의 고향 통영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과 2001년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통영현대음악제 – 윤이상을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윤이상을 추모하는 음악제가 열리면서 이를 정례화하는 기구를 만들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마침내 2002년에 ‘서주와 추상’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통영국제음악제가 개최되었고,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초대 이사장은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맡았다. 당시 조직위원장이었던 마산MBC 대표이사 윤건호는 축사에서 이렇게 의미를 밝혔다.

“우리는 이 통영국제음악제를 통해서 한 위대한 예술인의 업적이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자산적 가치를 남기는지, 또 한편으로 우리 스스로 윤이상 선생 알기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뚜렷하게 확인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매년 규모와 지명도를 높여갔고,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음악제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지난 23년간 이룩한 성과도 다채롭다.

2001년엔 통영국제음악제의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하는 TIMF앙상블을 창단했고, 2003년엔 경남국제음악콩쿠르를 시작, 2009년에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의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을 발굴·육성하고 이를 통해 국제 문화교류에 이바지한다는 이념으로 시작된 이 콩쿠르는 2006년 우리나라 음악 콩쿠르 중 최초로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했으며, 하익 카자지안, 김다솔, 송지원, 임윤찬, 한재민 등의 스타 연주자들을 발굴해냈다.

또한 통영국제음악재단은 2005년에 윤이상의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의 현대음악 연주단체인 앙상블 모데른과 함께 ‘윤이상 국제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지금은 ‘TIMF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꾼 이 아카데미는 음악 인재들을 위한 엘리트 교육프로그램으로 큰 반응을 얻었다.

통영국제음악당

이밖에도 ‘윤이상 동요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프로그램인 ‘꿈의 오케스트라’ 등을 운영하는 등 여러 음악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2014년 통영국제음악당 개관은 통영국제음악제가 도약의 전환점을 맞는 계기를 마련했다. 1309석의 콘서트홀과 300석의 다목적홀 전용 공간, 이를 기반으로 공연의 비중을 늘려 나간 결과, 2015년 통영시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되면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18년에는 마침내, 베를린에 쓸쓸히 잠들어 있던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통영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묘비에 적혀있던 ‘처염상정(處染常淨)’, 비록 혼탁한 곳에 있어도 항상 정결함을 잃지 않는다는 그 문구도 같이 한국으로 왔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음악 유산을 어떤 식으로 향유할 수 있는가 하는 숙제를 지게 되었다. 음악을 통해 모든 갈라지고 대립하는 세계가 서로 보듬고 공존하는 세계가 되길, 아마도 윤이상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