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9화. 쪽빛 바다가 가르쳐 준 것들
통영에선 매끈한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첩첩 막아선 섬들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배들이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길을 잘못 들면 바다에 갇히기 쉽다. 사방으로 뚫려 있는데도, 동서남북이 헷갈리고 암초가 수면 아래에 군데군데 숨어 목숨을 노린다. 희망이 절망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삶과 죽음이 섬을 끼고 왼쪽으로 도는가 오른쪽으로 도는가로 판가름 나기도 한다. 통영에서 나온 글들은 쪽빛 바다를 닮았다. 단숨에 훤히 뵈진 않더라도, 수천 번 오간 경험을 바탕으로 섬과 섬 사이 길을 찾는다.
소설가 박경리를 빼고 통영 문학을 논할 수는 없다.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후 평생을 소설가로 살았다. 대하소설 <토지>는 광활한 등장공간과 개성 넘치는 인물들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한 작품이다. 박경리는 1969년 <토지>를 시작하기 전에도 다양한 장편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 여인들이 삶의 질곡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를 담은 성장소설이자, 통영이란 항구의 풍속을 고스란히 담은 세태소설이다. 명정골에서 서문 까꾸막을 내려가는 박경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강구안에서 뻗어가는 통영 바다였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배였고, 그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었다. 박경리 특유의 유장하면서도 질박한 이야기는 까꾸막의 좁은 골목에서 이미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통영 문학을 우뚝 세운 이로, 소설에 박경리가 있다면 시에는 유치환이 있다. 1908년 출생한 유치환은 통영보통학교를 마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가서 토야마(豐山) 중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통영에 정착하여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통영여중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 창작에 집중하였다. 1947년 시집 <생명의 서>를 출간하여 생명파 시인으로 위치를 굳건히 했다. 그의 시에는 통영의 구체적인 지명과 풍경이 담긴 시가 매우 많다. 대표작 <깃발>에 등장하는 ‘저 푸른 해원(海原)’이나 <그리움 2>에 나오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는 절창은 그의 시적 상상력이 통영 앞바다에서 비롯되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시조시인 이영도의 작품에서도 통영에서의 생활과 고뇌가 묻어난다. 192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1946년 통영여고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 당시 통영여고엔 윤이상이 음악 교사, 유치환이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유치환과 주고받은 편지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깔끔한 시어와 대담한 전개, 뚜렷한 주제의식과 세련된 표현방식은 지금 읽어도 신선하다. 유치환과 통영이 이영도의 시조 세계에 끼친 영향은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라산의 뇌임>은 바다를 끌어들여 격렬한 사랑을 표현한 절창이다.
내 것이로다. 이 파도
설레이는 울부짖음
애모도 절한
차라리 푸른 분노
물굽이
아슬한 너머
뭍이여, 너 뭍이여
-이영도, <한라산의 뇌임>
유치환은 ‘파도야’라고 부르며 절망하고, 이영도는 ‘뭍이여’라고 부르며 고통스러워한다. 통영 앞바다의 파도와 뭍에서 상상력을 키운 사모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시조시인 김상옥은 통영이란 항구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시조시인이다. 1920년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생계를 위해 인쇄소의 견습공을 일하면서도 습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5세인 1934년에 동시 <제비>를 썼고, 서예 서화 전각 등도 배우고 익히기 시작했다. 해방 후 통영문화협회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였고, 전통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감식안을 바탕으로 활동하였다. 대표작인 <백자부>와 <청자부>를 비롯하여 많은 작품이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

시인 김춘수는 언어와 대상의 관계에 천착한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1922년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니혼(日本) 대학 예술과를 중퇴하였고, 1946년 고향으로 돌아와 통영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와 삶을 품으면서도 고향 통영의 서정을 노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춘수는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 교사로 통영에 반년 남짓 머물며 대표작을 남긴 화가 이중섭에 관한 시를 여러 편 남겼다. <이중섭 5>는 이중섭의 통영 시절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통영에서 태어나거나 장기간 머물며 창작활동을 한 문인들과는 달리, 여행이나 기타 이유로 통영을 방문한 후 작품을 남긴 이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통영이 뭍길과 물길이 모이고 뻗어 나가는 남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이기 때문이다. 통영을 방문하고 시를 남긴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백석이 있다. <통영>이란 제목을 앞세운 시만 해도 세 편이다. 백석이 작은 하동집의 규수 박경련을 사모하여 통영에 내려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지만, 백석의 시편에 담긴 사건과 감정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통영을 다룬 백석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박경련이나 그녀의 남편 신현중의 생애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겠다.


통영 문학은 이룩한 성과만큼이나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두 가지 방향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앞서 거론한 통영의 문인들은 각자 흩어져 고독하게 작업한 것이 아니라, 통영의 항구와 섬들을 어울려 다니며 대화도 하고 창작도 했다. 음악가와 화가 등도 동참했다. 선배 문인들의 우정과 창작열을 되살리는 작업들을 폭넓게 꾸준히 했으면 싶다. 다음으로 통영이란 항구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도도한 흐름을 타고 명멸한 사건들을 문학 작품으로 남기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세워진 시기와 새로운 근대문물이 유입되고 또 해외로 통영 사람들이 나아간 개화기와 피란민들이 몰려온 한국전쟁 시기를 다룬 문학 작품이 새롭게 나와야, 통영 앞바다의 쪽빛 물결이 짙은 까닭을 더 풍부하게 노래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