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6화. 예술의 숨결 속에서 만나는 바다와 음식

남쪽 바다와 마주한 통영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다. 바다와 섬, 골목과 시장,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과 문화가 한데 이어지는 독특한 맥락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통영의 음식문화는 식탁의 풍요를 넘어, 계절과 역사, 예술의 결을 품고 있으며, 이는 도시 전체의 예술적 감수성과 맞닿아 흐른다.

통영의 음식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살아 숨 쉰다. 겨울의 바다는 살이 오르고 깊은 맛을 담은 해산물을 선사하며, 봄이면 남쪽 바다가 깨어나듯 새 생명이 식탁 위로 올라온다. 여름에는 섬과 해초의 다채로운 향이 삶을 가득 채우고, 가을에는 수확의 절정과 함께 바다와 들의 색이 어우러진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음식은 자연의 섭리와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가 결합한 서사적 경험이 되며, 이는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문학적 장치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유치환, 김춘수 등의 통영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통영문화협회의 인사들이 시인 제옥례 선생님의 사랑채에 모였을 때, 제옥례 선생님은 방풍탕평채와 같은 제철 향토 음식을 상에 올렸다. 시인 백석을 비롯해 통영 문인들은 실비집인 샘이집, 복자네집에서 어울리며 술 한잔에 다양한 해산물을 즐기고 음식으로 예술을 나누며 상상을 펼쳤다. 어찌 통영의 사계절이 작품 속에 담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백석 ‘통영’ 중에서

통영의 봄은 김상옥 시인의 시에서 시작된다. 2월이 지나며 남쪽 바다는 겨울의 잔잔한 차가움을 밀어내고, 붉은빛 멍게와 신선한 조개류, 미더덕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육지에서는 시금치와 쑥이 제철을 맞아 부드럽고 향긋한 나물로 식탁을 채운다. 봄철 음식 중 눈에 띄는 것은 방풍나물, 쑥, 머위, 원추리, 가시오가피순과 같은 섬에서 나오는 산나물이다.

김상옥 시인은 시 ‘참파노의 노래’에서 봄의 쑥국, 햇상추 쌈, 향긋한 방풍나물로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시각적·미각적 이미지로 풀어냈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소금기와 섬에서 자란 향긋한 나물, 계절의 첫 미각이 교차한다.

여름의 통영은 시장에서부터 달라진다. 시장에는 고구마순, 하지 감자, 서실과 석모, 꼬시래기와 같은 여름 해초가 자리 잡는다. 우뭇가사리를 데쳐 만든 우묵은 콩물과 함께 즐기고 바다는 장어의 계절을 맞아 샤브샤브, 회 등 보양식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장어국은 여름철 통영 대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향수를 담는다. 독일의 베를린에서 윤이상 음악가에게 아내 이수자 여사가 끓여 주었던 장어국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예술로 이어주는 매개였다.

김춘수 시인은 통영 바다와 음식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며, 고향과 음식이 하나로 결합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했다. 그가 즐겨 먹었던 통영식 장어국, 생미역무침, 그리고 작품 속 털게살과 해삼이 바로 고향과 삶을 담은 상징이다.

가을에는 계절의 변화가 음식 속에 더욱 두드러진다. 구절초, 머위꽃, 해국 등 가을꽃이 섬과 해안에 만발하며 다채로운 색상을 선보이고, 겨울을 앞둔 바다는 수확의 절정을 보여 준다. 미역, 물메기, 대구, 볼락, 도미, 아귀, 복어, 학꽁치, 호래기, 굴, 문어, 파래, 김 등 다양한 재료가 등장하며 바다의 풍요를 예고한다. 작품 또한 가을 색과 풍부한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색채가 더욱 풍성해진다. 전혁림 화백은 갖가지 나물로 속을 채운 도미찜을 찾아 통영을 거닐며, 자연과 음식, 색채와 조형의 관계를 작품 속에 옮겼다. 또, 가을 바다와 해산물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도 색채와 질감으로 계절의 감각을 표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겨울에 통영 음식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농업 기반의 지역에서는 겨울이 오면 저장해 둔 곡식과 저장음식으로 겨울을 나고 보릿고개를 겪지만, 통영은 겨울철이 가장 해산물이 풍부할 때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는 온갖 재료로 겨울 음식을 준비한다.

박경리 문학에서 음식은 삶과 계절의 감각을 담는 상징적 존재로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 통영 유지 집안의 흥망성쇠를 담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음식은 단순한 서사적 배경을 넘어 인물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매개체로 등장하는데, 겨울철 약대구가 언급된다. ‘약’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닐 만큼 약대구는 겨울철에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귀한 음식이다. 대구는 약대구와 마른 대구로 나누어 조리하고, 생대구국으로, 머리는 조림으로, 내장과 아가미, 이리는 젓갈로 담그니 식탁이 이 이상 풍성할 수가 없다.

겨울철 통영의 독특한 맛 하면 볼락김치를 뺄 수 없다. 생선의 살과 함께 발효되며 더욱 깊어지는 김치의 맛. 박경리 작가는 원주 시절 통영에서 가져온 볼락김치를 먹고, 계절과 재료가 어우러지는 풍미 속에서 인간과 자연, 기억과 삶의 결을 느꼈다.

겨울 음식은 정성을 다해야 하는 조리 과정과 세심한 손길이 더해지며 더욱 특별해진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바다는 맛의 절정을 선사하며, 사람들은 거센 바닷바람 속에서 함께 수확하고, 함께 손질해 저장하고,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적 경험을 공유한다. 먹는 즐거움을 넘어, 계절과 역사, 지역 문화를 예술적 체험으로 승화시킨다.

수천수만 번의 계절을 지나 통영에서는 매일 바다와 육지, 사람과 예술가, 장인과 상인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장이 펼쳐져 왔다. 지역 예술가들은 음식에서 영감을 얻고, 제옥례 선생님과 같은 음식문화 전승자와 손맛을 이어온 어머니들은 공동체와 예술가를 연결했다. 음식은 시간과 계절, 역사와 기억,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을 담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복합적 문화 서사다. 통영의 식탁 위에는 통제영을 비롯한 역사적 기억, 장인들의 솜씨와 예술적 상상, 그리고 오늘날 시민과 예술가가 만들어 가는 풍요로운 시간과 이야기가 함께 놓여 있으며, 이것을 음식이 연결한다. 음식이 곧 역사이며, 도시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