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4화.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살펴보는 통영

통영이란 지명은 일찍이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통영이라는 도시에 있어서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한 도시의 이름이 되었을 정도일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은 1592년 5월 7일 거제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당포해전, 한산도해전, 그리고 부산포해전에 이르기까지 왜군을 연달아 격파함으로써, 남해안의 해상 통제권을 확보했다. 이는 왜군의 수륙병진 작전을 봉쇄한 쾌거였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전라좌수영이 있는 오늘날 전남 여수에서 출동해서 경남의 바다로 진군할 때마다, 수군들의 피로가 너무 쌓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부산과 여수 사이의 좁은 물목을 활용해서, 전진기지로 사용하고자 했다. 여수에서 새벽밥을 먹고 출발하면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고 부산을 비롯해 마산과 진해에 자리 잡은 왜군을 공격할 수 있는 ‘견내량(통영과 거제 사이 위치)’ 물목을 선택했고, 견내량의 입구를 틀어막을 수 있는 ‘한산도’에 수군기지를 설치했다. 그렇다. 한산도해전의 대승을 이룬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1593년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도의 수군을 총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로도 조선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일본의 정세는 혼란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진의는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 임진왜란 때 조선 해상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임시로 창설했던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책을 이제는 상설화했다. 그리고 오늘날 부산, 통영, 여수 세 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할 곳으로 물망에 올랐다.
그런데, 부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곧바로 공격했고, 기습을 받으면 대군영(大軍營)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고, 여수는 부산과 통영을 지원하기에는 너무 멀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조정은 통영을 선택하였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남해안 바다를 수호하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통제영으로 자리 잡았다. 명장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혜안을 조선 조정도 인정한 조치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은 세병관(洗兵館)이다.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 면적이 가장 넓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세병관을 오르는 입구는 ‘지과문(止戈門)’이다. ‘창을 거두는 문’이라는 의미로 평화를 상징하는데, 이 글자를 하나로 모으면 한자 ‘무(武)’가 된다. 즉,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세병관(洗兵館)’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유래한 이 이름은 ‘은하수를 끌어와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 즉 전쟁 대신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알고 보면, 통제영에는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세병관(洗兵館)과 상호 대구(對句)가 되는 건물이 있었다. 바로 ‘만하정(挽河亭)’이다. 조선 후기 통제영 지도를 살펴보면, 통제영의 정문인 남문(南門) 위 서쪽 언덕에 자리 잡은 만하정을 찾을 수 있다. 만하정은 봄, 가을 조선 수군의 군사훈련인 수조(水操) 행사가 열릴 때면, 수백 척의 전선들이 통영 앞바다에서 펼치는 군사훈련을 바라보는 최고의 조망처로, 시인 묵객은 물론 영남의 백성들까지 몰려들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당시 만하정은 허물어졌다. 세병관과 짝을 이루어 만하세병을 이루는 세상.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 조선 위정자와 백성들의 염원이 담긴 곳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만하정의 흔적을 찾았던 조선 후기 통제영 지도에서는 외에도 당시의 재미있는 풍경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강구안이라고 부르는 통제영의 해안에 두 가지 공간이 있다. 왼쪽에는 여러 척의 전선들이 정박해 있고, 오른쪽에는 네 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왼쪽의 전선들은 일명 ‘통제영 8전선’으로, 일곱 척의 판옥선과 한 척의 거북선이다.
일반적으로 판옥선 한 선단은 판옥선 한 척과 병사들이 승선하는 병선, 그리고 적에 대한 정탐과 식수 공급 등을 담당하는 사후선 두 척으로 총 네 척으로 구성된다(거북선도 같은 구성이다). 그러니, 통제영의 8전선은 기본적으로 서른두 척이며, 통제사가 승선한 천자일호선(千字一號船)을 보조하는 선박까지 더해 서른다섯에서 서른여섯 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였다.
통제영 전선들이 정박하던 왼쪽 해안이 그대로 통영항의 여객선 부두가 되었다. 남해안 여객선들이 부산과 통영, 여수를 오가면서, 여객선 부두 주변에 충무김밥 거리가 형성되었다. 오른쪽 해안에는 네 척의 선박이 보인다. 통제영과 인근 군현을 오간 네 척의 장배, 일명 4장선(四場船)이다. 주요 행선지는 거제와 고성, 김해, 하동이다. 거제에서는 목재가 실려오고, 고성과 김해에서는 쌀이 왔으며, 하동에서는 물품을 담는 옹기가 왔다.
오른쪽 해안에는 쌀을 거래하는 미전(米廛), 옷감을 파는 포목전, 각종 물건을 거래하는 물화전, 그리고 담배와 해삼을 도맡은 남초전과 해삼도가가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 통영중앙전통시장이 자리 잡았다.
이렇듯 통제영의 역사적인 장소와 오늘날 통영의 장소는 시대에 따라 형태는 바뀌었을지언정 그 역할과 상징성은 그대로 유지된 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니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 이름의 유래가 될 만하지 않은가.